
우리는 과연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성격과 인종, 외형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넘어, 그저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감정만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을까요? 정보와 생각, 그리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수많은 요소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기준과 판단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도 전에 분석하고, 사랑하기도 전에 조건을 따지는 일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럴 때마다 저는 가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인류가 오랜 시간 서로에게 손을 내밀며 살아올 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그 힘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말이 필요 없다고. 그것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서로의 언어가 달라도, 서로의 방식이 달라도, 마음이 닿는 순간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냉전 시대 (Cold War)
미국과 소련 간의 우주 경쟁이 한창이던 1962년, 미국의 도시 볼티모어에는 엘라이자 에스포지토라는 여성이 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아 고아로 자랐고, 말을 할 수 없는 그녀는 세상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녀에게도 나름의 단단한 일상이 존재합니다. 밤이 깊어 알람이 울리면 잠에서 깨어나 계란을 삶고, 짧은 시간 동안 욕조에 몸을 담그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웃에 사는 노인 자일스를 챙기고, 다시 계란으로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정부 소속의 항공우주 연구소로 출근합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무시를 받기도 하지만,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젤다 풀러만은 언제나 그녀를 있는 그대로 대해줍니다. 엘라이자와 젤다는 상사의 무시와 차별, 그리고 고된 업무 속에서도 서로에게 작은 의지가 되어주며 하루하루를 버텨 나갑니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엘라이자의 삶은 완전히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그녀는 종종 창문에 귀를 가까이 대며 바깥의 소리에 집중합니다. 마치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연결되려는 것처럼, 조용하지만 분명한 호기심을 품은 채로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같던 연구소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엘라이자는 젤다와 함께 평소처럼 청소를 하던 중, 많은 연구원들과 거대한 수조를 보게 됩니다. 호기심에 그 수조를 들여다보던 그녀는 이제껏 본 적 없는 무언가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라게 됩니다. 그곳에는 평범한 연구 대상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설명하기 힘든 어떤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엘라이자의 조용하고 반복되던 세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양서류 인간
엘라이자는 그곳에서 세상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생명체를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처럼 팔과 다리를 지니고 있어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인간과 같다고 하기도 힘든 모습입니다. 낯설지만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 존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묘한 감각을 남깁니다. 연구원들에게 그 생명체는 단지 분석하고 연구해야 할 대상일 뿐이지만, 엘라이자에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그녀에게 그 존재는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마음을 끌어당기는 낯선 존재로 느껴집니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괴생명체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괴물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일반적으로 괴물은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고 파괴를 일으키는 존재로 그려지지만, 이 작품에서의 괴생명체는 오히려 인간 사회가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엘라이자와 이 생명체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말을 할 수 없는 엘라이자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그 존재는, 오히려 언어가 없는 상태에서 서로의 감정을 더 직접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두 존재는 빠르게 교감을 나누며 우정을 쌓아가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엘라이자와 그 괴생명체는 서로 전혀 다른 존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닮아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사회 속에서 쉽게 이해받지 못하고, 어딘가 주변부에 머물러야 했던 두 존재는 결국 같은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됩니다. 겉으로는 다르게 보이지만, 소외받는 존재라는 공통점이 그들을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정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오랫동안 영화에서 반복해 온 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종종 사회에서 배척당하거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을 통해 인간 사회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어 보여주곤 합니다. 우리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괴물은 오히려 타인을 이해하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믿는 인간들은 점점 더 폭력적인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그렇게 영화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과연 괴물일까요, 아니면 괴물을 만들어내는 인간일까요.
괴물
이 생명체를 통제하는 인물은 연구소의 보안 책임자인 스트릭랜드입니다. 그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이 생명체와의 충돌을 암시하듯, 손가락이 물어뜯긴 채 피를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잘려 나간 손가락을 찾아준 엘라이자와 젤다에게 그는 자신이 이 생명체를 먼 곳에서 포획해 왔다고 말하며, 그들을 무지한 사람 취급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어서 그는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자신의 모습과 닮게 만들었다. 물론 당신들보다는 나에 가깝게 만들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스스로를 우월한 존재로 여기고 타인을 내려다보는 권위적인 태도를 드러냅니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도 그의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시선, 그리고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오만한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스트릭랜드는 질서와 통제, 그리고 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물입니다. 그에게 세상은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관리하고 지배해야 할 대상에 가깝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존재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해야 할 위험 요소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이 괴생명체는 연구하거나 이해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단지 길들여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인물은 냉전 시대가 지니고 있던 권력과 두려움의 논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영화는 묘한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가 괴물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요. 인간의 모습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일까요, 아니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지배하려 하는 인간의 태도야말로 또 다른 괴물의 모습일까요.
사랑의 언어
엘라이자와 생명체는 연구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금씩 교감을 쌓아 갑니다. 그러나 그 생명체는 스트릭랜드에게 끊임없이 학대를 당하고 있었고, 결국 엘라이자는 그를 연구소 밖으로 빼내기로 결심합니다. 처음에는 자일스가 괴물이라며 이를 거부하지만, 엘라이자는 “그는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몰라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요.”라는 말로 그를 설득합니다. 결국 자일스와 젤다, 그리고 갈등하던 호프스테틀러 박사의 도움으로 엘라이자는 생명체를 연구소 밖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 생명체가 머물 수 있는 곳은 결국 인간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엘라이자는 그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부두로 데려갈 계획을 세웁니다. 그 과정 속에서 엘라이자와 생명체는 서로의 감정이 단순한 동정이나 호기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죠.

영화는 이 사랑을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뮤지컬 장면은 현실의 사건이라기보다는 엘라이자의 상상에 가까운 순간입니다. 말을 할 수 없는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고전 뮤지컬의 형식을 빌려 노래하고 춤추는 이 장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녀의 사랑을 영화의 언어로 전달하는 순간처럼 보입니다. 현실 속에서는 전해질 수 없는 감정을 음악과 움직임, 그리고 화면의 리듬을 통해 대신 표현하고 있는 셈입니다. 마치 사랑이라는 감정이 언어로 설명되기 어렵지만, 예술은 언제나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고전 문화에 대한 향수를 깊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음악은 마치 오래된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질감을 지니고 있으며, 화면 속 분위기 역시 과거 영화들의 정서를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흑백 화면으로 표현되는 뮤지컬 장면은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헌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장면은 말을 하지 못하는 엘라이자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생명체의 사랑을 무성영화에 빗대어 표현하는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두 존재의 감정이 대사 없이도 전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오히려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사랑을 설명하려 하기보다, 다양한 예술적 언어를 통해 그것을 느끼게 합니다. 말, 음악, 움직임, 그리고 이미지까지. 영화가 가진 모든 표현 방식을 동원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사랑의 모양
하지만 둘의 시간은 오래 이어질 수 없었습니다. 예정된 시간이 되어 엘라이자는 그를 돌려보내기 위해 부두로 데려가고, 스트릭랜드는 그들을 뒤쫓습니다. 부두로 도착해, 이제 서로 마주한 이별 앞에서 슬퍼하는 순간 스트릭랜드가 나타나고, 둘을 향해서 총을 쏩니다. 하지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생명체는 스스로를 치유해 스트릭랜드 앞에 서고, 그를 쓰러뜨립니다. 스트릭랜드가 생각하던 신이 그에 앞에 나타난 순간이었죠. 그리고 나서 숨이 멈춘 그녀를 안아 들고,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물 속에서 그가 엘라이자에게 입을 맞춘 순간 그녀가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둘은 심연속으로 사라집니다.

어쩌면 이 둘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괴생명체와 말을 하지 못하는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누군가는 그것을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시선에서는 그것이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사랑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 관계를 결코 기이하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아주 조용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으로 그려냅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은 어쩌면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분명하게 규정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물이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바꾸듯, 사랑 역시 하나의 모습으로 정의될 수 없는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엘라이자와 생명체의 관계를 통해 세상의 사랑이 반드시 하나의 기준이나 형태 안에 머물러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결국 사랑은 누군가가 정해 놓은 틀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함께 만들어 가는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영화 속에는 이 생각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엘라이자가 버스를 타고 창가를 바라보는 순간, 창문 위에 맺힌 물방울들이 서로 뒤섞이며 천천히 흘러내립니다. 흩어져 있던 물방울들은 점차 서로 가까워지더니 결국 하나로 합쳐집니다. 마치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던 두 존재가 결국 하나의 흐름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세상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던 이 사랑은, 세상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서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조용히 서로를 치유합니다. 어쩌면 사랑이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르죠. 정해진 형태를 따르지 않더라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 속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깁니다. 사랑은 과연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물처럼,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결국 서로에게 스며드는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대의 모양 무엇인지 알 수 없네,
내 곁에는 온통 그대 뿐.
그대의 존재가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내 마음 겸허하게 하네,
그대가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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